기분 나무는 구름의 영토 서쪽 끝에 도열해 있었다
그늘 밑에는 알파카 나의 알파카가
어느새 우리는 구름의 영토 끝까지 날아왔구나
무구한 검은 동공이 소용돌이치며
연관 없는 어휘들의 밤 위로 날아오를 때
너는 어리지 않다
너는 늙지 않았다
너는 아직 늙지 않았다
꼭짓점과 모서리들이 멀어진다
나는 몇개의 점과 선과 면을 간단히 밀어낸다
발밑에는 줄지어 누워 있는 녹색의 풀
구름의 무덤 곁에선 녹색의 목소리가
나는 이 생을 두 번 살지 않을 거야
완전히 살고 단번에 죽을 거야
알파카 나의 알파카
아름다운 얼굴이 그 여린 솜털이
부드러운 바람에 조용히 흩날릴 때
나는 지구의 회전을 믿지 않는다
나는 나의 여백을 믿는다
나무의 수맥을 따라 흐르는 물결 너머
테두리를 잊은 마음이 밀려온다
- 이제니, 알파카 마음이 흐를 때
July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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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분간/ 나 희 덕
이 꽃그늘 아래서
내 일생이 다 지나갈 것 같다.
기다리면서 서성거리면서
아니, 이미 다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기다리는 오분간
아카시아꽃 하얗게 흩날리는
이 그늘 아래서
어느 새 나는 머리 희끗한 노파가 되고,
버스가 저 모퉁이를 돌아서
내 앞에 멈추면
여섯 살박이가 뛰어내려 안기는게 아니라
훤칠한 청년 하나 내게로 걸어올 것만 같다.
내가 늙은 만큼 그는 젊어서
우리는 서로의 삶을 맞바꾼 듯 마주보겠지.
기다림 하나로도 깜박 지나 버린 생
내가 늘 기다렸던 이 자리에
그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을…
실상 우리의 연애라는 게 발라드이기만 한 것은 아니니까. 유치한 자존심, 집요한 욕망, ‘찌질한’ 응석 따위의 노이즈들이야말로 연애의 진짜 사운드인거니까.
시인이 시를 쓰지만 시가 시인을 쓰기도 합니다.
“인물의 내면을 말로 설명하겠다는 생각을 접어라. 굳이 말해야 한다면, 아름답게 말하려 하지 말고 정확하게 말해라. 아름답게 쓰려는 욕망은 중언부언을 낳는다. 중언부언의 진실은 하나다. 자신이 쓰고자 하는 것을 장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 장악한 것을 향해 최단거리로 가라. 특히 내면에 대해서라면, 문장을 만들지 말고 상황을 만들어라.” 그러고는 덧붙인다. “카버를 읽어라.”
“한때 내게 시는 ‘끝까지 가는 것’ 이었다. 그것만 ‘진짜’였고 나머지는 다 ‘가짜’였다. 지금은 이렇게 말하겠다. 시는 적당적당(的當滴當)히 가는 것이다. 끝까지 갔다가, 또는 끝까지 가려다 무서워서 되돌아 나오는 비겁의 자리가 시의 마음자리다. (…) 시는 어쩔 줄 모르는 삶의 흔들리는 언어다. 시는 흔들리는 삶의 어쩔 줄 모르는 언어다.”, 김중식 시인
“시는 글쓰기의 ‘사건성’ 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사태 속에서 움직인다. ‘쓴다’ 라는 행위 이전에 작품은 어디에도 없다. 사건은 벌어지는 것이며, 충돌하는 것이며, 의외의 방향으로 번지는 것이다. (…) 낯선 것(새로운 것)을 시로 쓰는 것이 아니라, 시를 쓰면서 우리는 낯설어지고 새로워진다. 영원히 시는 충분히 알려지지 않으리라”, 김행숙 시인
꽃들이 지는 것은
안 보는 편이 좋다
궁둥이에 꽃가루를 묻힌
나비들의 노고가 다했으므로
외로운 것이 나비임을
알 필요는 없으므로
하늘에서 비가 오면
돌들도 운다
꽃잎이 진다고
시끄럽게 운다
대화는 잊는 편이 좋다
대화의 너머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외롭다고 발화할 때
그 말이 어디에서 발성되는지를
알아채기 위해서는
시는 모른다
계절 너머에서 준비 중인
폭풍의 위험수치생성값을
모르니까 쓴다
아는 것을 쓰는 것은
시가 아니므로시집 <눈물이라는 뼈> 에서